처음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런 정도의 텐션으로 살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유도 모를 우울과 불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
일상에 집중하고 주변에 좀 더 다정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
사는 게 매일같이 권태와의 전쟁이라고 느끼지 않는 것,
쓰레기통같은 방을 좀 더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
절박함도 편두통도 옅어져 갔다.
나는 속에 아주 커다란 블랙홀을 가지고 있다.
그곳으로 모든 것들이 시커먼 곳으로 천천히 흘러들어가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그런 것을 끌어안고 산다고, 언제나 내 속에 그런 것이 있음을 자각했었다.
부교감 신경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약을 먹었다.
나는 이전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일상적인 사람들의 일상에 몰입해갔다.
언제나 지상에서 4cm정도 떨어져있는 것처럼 몽롱했던 스스로가 드디어 땅에 발을 붙인 것 같았다.
잠 못 드는 밤에 더이상 나를 설명해줄 노래를 찾아 헤매지 않았다.
- 사실 요즘은 남들이 얽어놓은 좋은 플레이리스트도 쉽고 많으니까.
가끔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가끔은 빠른 시간에 기억을 잃었다.
그런 날은 내가 반대편의 나를 찾아가는 날이었다.
다음 날은 후회를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갑고 안도했다.
어떤 날들은 습관적으로, 그립다는 듯이, 일상인 것처럼,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암전)
드문드문 이전의 발자국을 짚어 보다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오세요 핀란드 같은.
https://twitter.com/moimoifd/status/989515863165300736?s=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