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이 끝난 후에 나는 현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을 참 많이 원망했었다. 그들이 정책이나 정치 노선같은 것에 관심없이 단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내가 보기엔 근거 없는) 호언장담에 무지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한 명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민중으로서 안타까워했다. 사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새로운 내각은 눈이 멀 것 같은 표제들을 펑펑 터뜨렸다. 나는 추레한 모습으로 메신저에서, 혹은 반쯤 취한 채 술자리에서 비관조로 토로했다. 억울하면 돈 벌어서 한국을 떠야지 뭐. 이런 식이었다. 대선과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설득보다는 포기가 앞섰다. 의료보험이 민영화가 되든지 상수도가 민영화가 되든지간에 사람들은 땅값에 뉴타운에 경제에 더 반색했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생각했다. (인신공격 수준의) 비난을 받아도 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었으니. 나는 아마도 사람들이 자란다는 사실을 간과한 모양이다. 인터넷도 자란다는데 사람이 어찌 자라지 않을 수 있을까. 의식주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미국 쇠고기 개방 협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쇠고기 반대를 외치는 무리에 편승하기보다 직접 정보와 협의문을 찾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논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 바람이 불었다. 인터넷 시민으로부터 시작된 바람은 조금 맹목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에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정부가 우리를 강하게 키운다. 우리를 공부시키고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이 정부의 나름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 쇠고기 개방이 전부 다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분명 우리가 잃는 것에 반하여 얻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게 표면적이든 실질적이든, 어쩌면 일반 대중들이 알 수 없는 부분이든간에 무엇인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작에서부터 고시와 시행까지 적절치 못한 절차였다고 생각한다. 태도에 크게 문제가 있다.
나는 정치에 관하여 큰 관심도 없고 견해도 분명치 않으며, 지금 쓰는 이 글도 미진하기 짝이 없어 언젠가 다시 읽으면 무척 부끄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의 이슈에 대해 그냥 기사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쓰는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단순히 쇠고기 개방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불어오는 새로운 형태의 바람을 말이다. 인터넷 상의 정치토론이나 촛불시위는 한 때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나아가고 있는, 변화가 무척 빠른 역사의 한 때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처럼 아이들처럼 사람들이, 사회가 자란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새로운 감정이다.
사람들이 자라는 만큼 정부도 자라 줄까. 자라서 좀 더 나은 태도를 보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단순한 낙관이 아닌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정부도 강하게 키워야 자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인터넷이 자란다는 포털사이트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얘네는 어떻게 키워야 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