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2009. 5. 30. 01:50 from -

토요일 밤, 집에 혼자서 텀벅거리며 걸어오는 길에 내 그림자가 참으로 길었다. 왼쪽으로 있던 사람들도 검은 옷을 입었고 오른쪽으로 있던 사람들도 검은 옷을 입었었다. 왼쪽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혼란에 가득한 얼굴로 앉아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오른쪽의 어두운 옷을 입었던 청년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작은 먹거리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나마도 주전부리는 청년들의 어머니로부터 전달된 것이었다. 시큼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길에 아무렇게나 앉은 청년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바라보는 누군가의 어머니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그 와중에 한 무리의 총천연색 외국인 관광객이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가로등에 내린 내 그림자가 오른쪽 사람들과 왼쪽 사람들을 나누는 밤이었다. 가뜩이나 지친 어깨가 더욱 무거웠다. 나는 왼쪽 사람들에게도 오른쪽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뻣뻣이 들을 수가 없어 꼬리를 내린 개처럼 빠르게 집으로 사라졌다.

이번 주 내내 출퇴근길과 지하철 입구를 메운 전경 청년들을 봐야 했다. 그리고 그의 몇 배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를 봤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시청광장의 잔디가 얼마나 푸른가 하는 것 뿐이었다. 전경버스의 주차실력은 가히 놀라웠다. 화요일 저녁 두 시간여를 기다려 초라한 천막에 들어서서야 이게 꿈이 아닌가 하고 조금 실감이 났다. 분향소의 향 내음이 향기롭기는 또 처음이었다. 손 가닥가닥에 국화향이 배었다. 김소월의 초혼만 입에 중얼거렸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여름더위라던 주중 내내 사람들은 거리에 서있었다. 비슷하게 어두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미디어는 재빨리 가면을 바꿔 썼다. 사람들은 슬퍼하고 동시에 분노했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 분노를 코앞에서 받아내야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나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누가 나쁜거야? 죽음 앞에 나쁜 게 무슨 소용이겠나 싶다.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고 사슴이는 슬피 우는데.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만 사람들은 불러내었다.

오늘 노제의 곁을 지나치며 아 벌써 7일이나 되었구나 생각했다. 참 시간은 빨리도 지나고,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마 대답이 없는 이름을 불러서 그럴 것이다.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회사 안까지도 들렸는데 대답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참으로 먹먹했다. 가슴은 처연하기만 한데 집에 오는 길에 태평로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곳곳에 쌓여있던 노란 일회용 물품들로부터 삶의 냄새가 짙게 났다.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이제는 잘 보내고 그 사이를 제대로 채워야 할 시간이 다가올테다. 채워지는 것이 아닌 채워야 할 시간에 대한 각오를 흐느끼던 만장에 했다.




Posted by yuj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