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비까지 와서 날이 일찍 저물었다. 차 안에서 한숨을 잔뜩 쉬었다. 비가 와서인지 여전한 감기 때문인지 지치는 날이었다. 퇴근시간에 들어설 무렵이라 차들이 꼬리를 물었다. 비에 번져서 가로등이, 헤드라이트가 둥글게 빛을 뿜는다. 빨간불, 멈춰 섰다. 멍하니 거리를 보는데 호랑이탈하고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인형이라서 마주친 것처럼 보였다. 뒤로는 커다란 2층의 가게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둑한 길거리에 비를 맞으며 차들을 보고 있었다. 생각없이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안녕안녕. 뭉특한 인형손을 흔들어서 답을 해준다. 어랏, 나 보이나. 나 1차선인데. 계속 안녕-했더니 저도 계속 손을 흔들어준다. 이번엔 양 손을 들어서 우는 표시를 해보였다. 나 오늘 우울한데. 그랬더니 짧은 팔다리를 덤방덤방 휘저으며 춤을 춰준다. 파란불, 신호가 바뀐다. 춤을 추다가 우뚝 멈추고 잘가라고 다시 손을 흔든다. 고마웠다. 되게 고마웠다. 진짜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눈가로 번진 아토피가 심해질까봐 얼른 티슈를 꺼내 눈을 꾹 눌렀다. 오늘 밖에 되게 추웠는데. 추적추적 비도 왔는데. 느리게 지나는 시간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다. 끝도 없이 많은 차들이 빛을 내며 스쳐갔다. 생각한다. 내일도 춥다고 했는데. 어쩌면 내일은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이 모든 걸 덮어버릴 첫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