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진짜.

2010. 6. 8. 23:17 from -
오늘 아침에 몸이 정말로 안좋았다. 심하게 몸살기운이 있어서 월차 내고 집에서 뻗고 싶었지만, 공청회가 코 앞이라 할 일도 많고 받아야 할 전화도 많아서 꾸역꾸역 출근했다. 병원에 갔다가 느즈막히 출근을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메시지가 온다. 베어스 팬인 친한 언니가 다짜고짜 트레이드 기사 봤냐고 묻는다. 트레이드? 엉? 무슨 트레이드?

마운드에 올라가면 기도를 하는 투수, 수많은 혹사의 여름을 견뎌내고 작년에는 현진이와 좌-우완 원투펀치였던 투수가 트레이드가 됐다. 어느 날인가 빈볼을 던졌다고 마운드에서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는데도 눈 깜짝 안하고 고대로 맞아내던 게 첫인상이었다. 그 뒤에 인터뷰에서 "선배가 때리는데 어떻게 피하겠느냐"고 특유의 비싯 웃는 웃음에 아, 쟤는 뭔가 될 놈이다 싶었던 느낌이 확 왔었다. 집-학교-야구장밖에 모른다는 세모돌이, 섹시한 허벅지의 교회오빠가 이제는 오렌지색 유니폼을 안입는다고 한다. 누구든 자신이 애정을 갖는 팀의 선수들을 내새끼라고 생각하며 야구를 본다. 가끔 애증이 깊어 까더라도 내가 까지 남이 까는 건 못보는게 팬의 마음이다. 장성호도 김경언도 이동현도 기아 팬들에게는 그런 존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새끼 보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일단 간 선수들과 온 선수들의 나이만 봐도 장성호는 33세, 이동현은 31, 김경언은 28세다. 간 선수들은 안영명이 26, 박성호 24, 김다원 25세. 심지어 이동현은 부상을 달고 살고 김경언은 허리디스크가 있다. 장성호가 이전만큼의 성적을 내줄지 의문이며 팀에 그렇게 필요한 존재인가 싶다. 불펜이 넉넉한 것도 아니며 불펜에서 안영명이 못해준다고 생각지도 않고, 박성호와 김다원의 포텐이 부족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올 시즌 이후에 송광민 김태완이 군입대를 앞둔 나이라고 해서 이렇게 창창한 선수들을 보내고 장성호를 데려왔어야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내년에 장성호가 필요했던 거면 기다려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어차피 조범현 감독과 단단히 틀어진 장성호는 기아에서는 이미 버린 카드다. 그걸 기자들만 모이면 장성호 타령을 해가며 이런 마이너스 트레이드를 단행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당연히 나보다는 야구를 잘 알고 그걸로 먹고 사는 감독이 어련히 알아서 했으려고 생각하지만, 이럴거면 도대체 스토브리그에 FA 박한이는 왜 흘려보냈을까. 그리고 그동안 김혁민 윤근영 등으로 맞춰보았던 카드를 모두 무시하고 굳이 안영명을 내보냈어야 했던 이유가 뭘까. 송지만 트레이드 이후로 디씨부터 공홈 독수리마당까지 환영하는 글보다는 비난의 글이 쇄도한다. 한화와 기아의 팬이 아닌 다른 팀의 팬들에게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루 기록을 가지고 이 트레이드의 결과를 말 할수는 없겠지만, 오늘 장성호는 한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고 안영명은 한 타자를 잡으며 승리투수가 됐다. 한 끗 차이다. 그러나 1위하는 팀도 세 경기 중에 두 경기는 이기고 한 경기는 지는 스포츠, 공 한 개의 투구와 때로는 하나의 수비로도 승패가 갈리는 야구에서 한 끗 차이는 전부일 수도 있다.

유독 레전드 대우에 힘을 쏟고 선수들을 잘 보내지도, 잘 받지도 않는 팀의 분위기와 그간 그런 팀의 팬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안영명같은 선수가 트레이드 됐다는 것은 날벼락같은 일이다. 그게 프로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일부로 기억되는 야구의 맛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어지간해서는 잘 흥분하지도 않는 충청도 연고의 이 팀에서 한대화 감독이 단행한 트레이드는 배수진에 가깝다. 장성호의 스탯이 한대화 감독의 지도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4강이나 우승을 기대하는 이글스 팬은 없다. 그저 유망주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류현진 기록에 기뻐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마치 감독의 임기 3년 중 군대로 전력 외가 되는 선수들을 메꾸기 위해 유망주를 내보낸 모습으로 보인다. 이왕 성사된 트레이드 온 선수는 환영해주고 간 선수는 잘 하기를 바라는 너른 마음을 갖기에는 감독의 행보가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감정적으로 봐도, 그리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다.

오늘따라 예전 선수들이 그립다. 클린업 쿼텟이라고 불렸던 클락-김태균-이범호- 김태완의 타선. 안영명이 맞았다고 옆차기를 날리던 송회장님이 서있던 마운드. 내 인생 최초의 에이스 정민철. 류현진 나오는 날만 빼고 매일같이 등판하던 마정길. 수술하기 전에 윤규진이 던지던 직구. 대성불패의 이상한 투구폼. 우리 피자신 이도형. 심지어 볼빨강 감독님까지 그립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마음도 씁쓸하고 몸도 좋지 않은 하루다.



Posted by yuj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