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아요.

2014. 10. 28. 00:42 from -

지금이나 그때나 밤잠이 없던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새벽이 늦도록 라디오를 들었다.

열두서넛 짜리가 무얼 안다고 신해철의 음악도시가 끝나는 2시까지 누워서

지직거리는 주파수를 훑으며 자라났다.

라이코스 뮤직으로부터 나온 마치 해적방송 같았던 고스트스테이션

피아와 같은 수많은 인디밴드의 곡을 들었고

펑크와 그런지의 취향을 다졌고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니카로 저변을 넓혔다.

나는 딴지일보를 읽고 고스를 듣던 중딩이었다.

당연히 수업은 제대로 듣는 날이 드물었다.

내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면 핑클 노래보다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더 많이 불렀다.



머리가 더 여물어 마왕의 고고함이 불편해지고

좋은게 좋은 거지 하며 나는 주관의 관철보다 타협이 흔해지고

어쩌면 당신도 세월에 훑어져 학원 광고같은 걸 찍으면서

매일같이 듣던 라디오는 켜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보고 있지 않아도 어디선가

늘 그랬듯 당신의 방식대로 잘 살거라서 걱정한 적 없었다.

며칠 전의 소식에도 금새 훌훌 털고 나와 죽음 직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어울렁 더울렁 늙어가며 꼰대 되어가며 잘 살아보자고

동네 무서운 삼촌처럼 오래오래 내 귀를 보듬어줄 걸로만 알았지.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마왕, 아직 너무 젊잖아.






Posted by yujo :